한일 주택가 풍경 2

urashimayuuki그것은 바로 길바닥에 널려 있는 담배꽁초들이다.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길거리가 깔끔해서 정말 놀랐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데, 과연 한국에서 와서 보면 일본 주택가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바꿔 말하면 한국 주택가에는 여기저기 쓰레기들이 흩어져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것을 확인하고 싶다면 서울 아무 지하철이나 내려서 한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한 5분 정도 역 주변을 빈둥거리면서 쓰레기가 눈에 띄면 죄다 봉투에 넣고 다니면 된다. 봉투는 금방 꽉 차 버릴 것이다. 그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그리고 봉투 속을 들여다보면 그 절반 이상이 길에 버려진 담배꽁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즘 일본에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담배 기피 현상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로, 원래 남자의 필수 교양이던 담배가 마치 아재들의 상징처럼 취급되는 추세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흡연자가 활개치며 돌아다니고 있다. 말 그대로 길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의기양양 담배를 입에 물고.
일본에서 이미 못 보게 된 “아루키 타바코 (담배를 피우면서 돌아다니는 행위)”가 한국에서는 다반사다. 그리고 그 꽁초들은… 거의 예외 없이 길가에 그냥 버려진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고, 피우고, 그리고 던지는 데까지 그 일련의 동작은
마치 시간이 지나면 담배꽁초가 스스로 증발해서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믿고 있기라도 하듯이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고 일종의 미학까지 느끼게 할 정도다.

일본인들이 목욕탕에서 무의식적으로 “커피우유”를 찾는 것처럼, 아니면 회식이 끝난 후에 자기도 모르게 라멘집에 끌려 가듯이, “처음부터 그럴 운명”이었던 것처럼 슬픈 꽁초들은 그렇게 길바닥 위에서 그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참고로 휴대용 재떨이는 거의 보급이 안 돼 있다. 어떤 한국인 남성에게 그 이유를 묻자, “남자 체면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했다. 참으로 신기한 사고방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담배를 둘러싼 사정은 대충 이런 식인데, 일본과 비교해서 좋은 점도 있다.
그것은 술집이든 카페든 식당이든 실내에 있는 한 그 악명높은 간접흡연을 당할 우려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모든 가게들이 완전 금연이다.
클래식한 찻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취미인 나에게 일본은 정말 보물상자 같은 나라인데, 그런 집에서 쇼파에 앉아 푹 릴렉스하려고 하면 꼭 어디선가 흘러오는 담배 연기가 코를 찌른다. 그것마저도 일종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냄새이고, 오래된 찻집의 매력이라고 하면 할말 없지만 원래는 누군지도 모르는 아저씨들의 폐를 통해 입으로 나온 것이라 생각하니 결코 기분이 좋진 않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할 때는 정말 고생이 많다. 우리집 딸들은 학교 교육의 영향을 너무 잘(?) 받은 탓에 담배를 싫어한다기보다 세계에서 가장 증오하고 있어서 이 집 괜찮겠다… 하고 들어가도 담배 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게를 바꿔야 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현재 일본에서도 분연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나, 언제나처럼 여러 업계의 꿍꿍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좀처럼 진전이 없는 것 같다.
한편 한국은 한번 마음 먹으면 다소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더라도 강경하게 진행하는 경향이 있어서 흡연자들은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즐길 권리를 완전히 박탈당했다.
이렇게 비흡연자들은 청결한 공기 아래서 먹고 마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신 안식처를 잃고 방황하는 신세가 된 한국 흡연자들은 죄다 야외로 몰려 나왔다. 저녁 시간 서울 번화가를 걷다 보면 식당이나 술집 앞에 삼삼오오 모여서 슬픈 연기를 뭉게뭉게 뿐 어내고 있는 흡연자들의 무리를 볼 수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도, 겨울의 칼바람 속에서도, 그들은 담배를 피우고, 그리고 자신들에게 냉정한 세상에 대한 자그마한 저항이라도 하듯 담배꽁초를 그 언저리에 쌓고 있는 것이다.
(한일 주택가 풍경3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