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주택가 풍경 3

urashimayuuki

지금까지 한국 주택가에 대해 실컷 불평(으로 들릴 수 밖에 없는 말들)을 늘어놓은 내가 이런 소리를 하기도 좀 그렇지만, 나는 결국 한국 주택가를 꽤 좋아한다.
비록 불법주차와 담배 꽁초가 천지이고 미관 상으로 결코 아름답다고 하지 못하더라도 뭐라 하기 어려운 묘한 애정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내가 한국 주택가 풍경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부분을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사람 냄새“다. 일본 주택가는 확실히 청결하다. 깔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하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 청결하고, 너무 깔끔하고, 너무 조용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여름 대낮에 도쿄 사타가야구 역에서 5분 떨어진 평범한 주택가를 걷다 보면 마치 촬영이 끝나고 버려진 영화 세트장 속으로 빠져들어간 듯한 착각에 휩싸인다. 어렸을 때 본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와 철인병단”에서 현실 세계와 완전히 똑같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거울 세계”가 나왔는데 마치 그와 흡사하게 뭔가 차갑고 뭔가 오싹한 느낌이 일본 주택가에는 감돌고 있다.

 

반면 한국 주택가는 여기가 의문의 여지 없는 인간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어필해 온다. 심지어 앞서 말한 불법주차들도 담배 꽁초도 여기가 엄연히 인간의 나와바리인 증거이고, 무엇보다 나와바리 주인장인 인간들부터가 친절하게도 길거리 여기저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맞다. 한국 주택가를 몇 분만 걷다보면 바로 알 수 있듯 골목 골목마다 삼삼오오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참 많다. 여름이면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 짜증이 잔뜩 난 표정으로, 겨울이면 칼바람에 눈매를 찡그리면서 딱히 뭐 할 일도 없이 그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들이 훨씬 쾌적한 실내 환경을 뒤로 하고 왜 바깥에 “있는” 것을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아직까지 난 알지 못한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건지, 아니면 혹시 남이 알면 안 되는 국가기밀을 띠고 있는 건지, 도대체가 미스테리다.

허나 하나 확실한 것은 그들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거리는 생명감을 지닌다는 것이다. 길을 지나는 내 모습을 환영하는 것도 그렇다고 배척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시선을 받고 있으면 왠지 나에게 “넌 여기에 있어도 된단다”고 해주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 속 깊은 곳이 묘하게 따뜻해진다.

 

그래서 난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아무 구멍가게나 들어가서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바나나우유 한 병을 구매하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