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urashimayuuki

나에게는 결혼기념일이 두개 있다. 이런 말을 하면 내 개인사에 대해 괜히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데 물론 둘 다 같은 사람하고의 결혼이다(어쩜 이 말이 더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나…).
한국인 아내와 한국에서 한 번, 일본에서 한 번 결혼식을 올렸다. 그래서 결혼기념일도 두 번인 셈이다. 그 중 8월 18일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기념일이었다. 당일 오후가 돼서야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나는 귀국 후 처음으로 난바역 지하상가에 있는 꽃집을 찾았다.
일본은 꽃이 비싸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지만 거기 꽃들은 한국과 비교해도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니었다.
아담한 꽃집 분위기에 아주 잘 어울리는 미소를 가진 직원이 내가 결혼기념일용 꽃다발을 찾고 있다고 말하자 가게 앞에 꽂혀 있던 꽃들 중 몇 송이를 뽑더니 능숙한 솜씨로 꽃다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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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뒤 장미에 안개꽃을 곁들인 마법처럼 예쁜 꽃다발이 완성되었고, 그 직원은 내게 그것을 건네주면서 “이걸로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물었다. 난 당연히 엄청 마음에 든다고 대답했고, 그 아름다운 꽃다발을 손에 들고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발걸음을 떼려고 한 순간,
직원이 갑자기 내 손에서 꽃다발을 빼앗더니 커다란 갈색 비닐 봉투(그것도 손잡이 위치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내가 여태껏 못 보던 타입)에 그것을 넣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이게 뭐지? 애써 만든 예쁜 꽃을 왜? 가려??

나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그녀한테 꽃다발이 아닌 대형 비닐 봉투를 받아 들고 정신이 나간 얼굴로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잠시 후, 일본에선 남자가 꽃다발을 직접 손에 들고 다니는 모습을 거의 못 본 것 같다는 것, 그리고 누가 그렇게 다니면 굉장히 남들 눈에 띌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발렌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니, 빼빼로데이니, 무슨무슨데이만 되면 서울의 길거리에는 자기 몸통만한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다니는 남자들이 넘쳐난다. 최근에는 드라이플라워를 파는 자판기도 등장했을 정도로 일상 속에서 꽃다발을 보게 되는 기회가 많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오래 살다 보니 내 감각이 완전 한국식이 되었구나 하고 절로 쓴웃음이 났다.
한국에서는 애정이라는 감정을 보란 듯이 남들에게 과시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그것을 가리고 남이 못 보도록 숨기려고 하는 것을 느낀다. 그게 가족간의 사랑이건, 연인간의 사랑이건 마찬가지다.
맞다 생각났다. 한국에 살았을 때 난 스마트폰 바탕화면을 아내 사진으로 했었는데, 어느 날 어떤 일본 여자분이 그것을 보더니
“일본에서는 그러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 없다”을 말을 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적 있었지.
다음에 꽃다발을 살 땐 봉투에 넣지 말라고 말해 볼까? 그런 상상을 하며 마침 들어온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